파도를 넘는 것보다 오늘을 견디는 일에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바다 위 삶이 알려준 무수한 해답들
3만 톤 배를 운항하는 스물일곱 여성 항해사의 이야기. 한번 배에 오르면 6개월은 꼼짝없이 갇혀서 생활한다. 1,000일이 넘게 배를 몰면서 매일 몰려오는 시련과 외로움은 오롯이 혼자 이겨내야 했고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바다 위 삶이 왠지 생소할 것 같지만 극단적 환경에서 매일 ‘혼자’를 견뎌야 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 않다. 사실 우리도 드라마 같은 극적인 시련보다 매일 닥쳐오는 공허에 더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외로움과 난관을 억지로 극복하지도, 또 애써 무시하며 피하지도 않는다. 맘껏 속상해하고,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다가 자신만의 온도와 속도로 적절하게 넘겨낸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고, 또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으면서 묵묵히 헤쳐나갈 뿐이다. 유독 특별하거나 강인해서가 아니다. 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자신만 믿으면 언젠가 이 파도가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하나의 정답이 아닌 여러 개의 해답을 건네주는 바다 위의 삶은 땅을 밟고 있는 이들에게도 큰 용기를 줄 것이다.
추천의 글
그녀의 글을 읽고 내 청춘의 모든 처음을 떠올렸다. 설레었고 두려웠고 흔들렸고 외로웠던 나의 첫 순간들. 어쩌면 청춘의 성장은 위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천일 동안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비로소 진짜 자신을 발견했던 한 청춘의 성장담이자, 양팔을 둘러 스스로를 껴안아주며 버텨냈던 한 여성의 진솔한 고백이다. 그녀는 묻는다.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3만 톤의 배를 책임지며 바다를 항해하는 그녀가 작지 않은 것처럼, 끝없는 인생의 파도를 통과하며 나아가는 우리 삶이 작지 않은 것처럼. 이 작은 책은 결코 작지 않다.
_고수리,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저자
불편한 삶을 살아본 자만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안다고 생각했던 상식들을 깡그리 부수는 깊은 바다에 빠지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불평과 혐오가 난무하는 시대에 작은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일깨운다.
⸺ 오현호, 《부시파일럿, 나는 길이 없는 곳으로 간다》 저자
책 속으로
내가 탄 배는 장애물 하나 없는 바닷길을 따라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나는 일 년의 절반을 배에 갇힌 채 살아간다. 오로지 바다, 바다, 바다만을 바라보는 동안 외로움이 도둑처럼 몰려왔다. 나는 왜 항해사가 되었을까 하는 끊이지 않는 질문들. 가족에 대한 그리움.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의 위압감. _p.19
도망칠 수 없었기에 맹렬한 기세로 뛰어올랐다. 배 위에 오르자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또 다른 그림이었다. ‘끝내준다’는 바로 이럴 때 쓰는 표현이었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 모습을 드러낸 배는 두려움인 동시에 물러설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왔다. 바로 그것이 눈앞에 있었고 난 그 배에 승선해야만 했다. _p.30
단언컨대, 어떤 일에 도전할 때 두렵지 않다면 그건 도전이 아니다. 도전의 크기는 반드시 두려움의 크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전하는 자는 두려워하는 자이고, 두려움은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스스로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될 환경 속으로 자신을 던질 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 _p.30
생각해보면 내 나이 스물일곱. 함께 승선한 선원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고, 나이 차도 많이 나다 보니 간혹 물밀듯 차오르는 외로움은 양팔을 둘러 스스로를 껴안아주며 버텨내야 한다. 어리다고, 여자라고 도움을 바랄 수 있는 환경도 아니거니와 이곳에선 자신의 몸 하나는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 _p.42
육지를 떠나 있으면 소중한 것에 대한 의미가 새로워진다. 사회적 배경, 재력, 남자, 스펙 따위는 아무짝에 쓸모없다. 가장 그리운 건, 땅이다. 그리고 그 땅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뿐이다. 당장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이란 게. _p.43
운명은 거역할 수 없다. 견뎌야 한다. 운명을 극복한다거나 맞선다는 거창한 포부는 자연 앞에서 부질없다. 나는 마스트에 켜진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바다가 잔잔해질 때까지. 삶의 시련을 극복하란 말이 때론 무책임하게 들릴 때가 있다. 극복이란 말의 추상성이 너무 커 사실 그 단어가 진정 무슨 의미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_p.45
아무리 배가 흔들리고 요동쳐도 선수의 빛은 늘 그 자리에 있다. 그 빛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방향을 잃지 않는다. 삶을 억지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응하며 기다릴 때 다시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게 아닐까. 바다가 잔잔해지고 안개가 옅어졌다. 어느새 검은 바다는 푸르고 투명한 피부를 드러내며 심해까지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길이 다시 열렸다. _p.46
정답은 없다. 오른쪽으로 피하든 왼쪽으로 피하든 잠시 속도를 줄였다 가든 충돌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위험이 감지된 순간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 일단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면 길은 계속 이어져 있고, 이내 다음 갈 길이 보인다. _p.49
바다로 나오고서야 지금껏 바다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항해를 반복하는 동안 바다는 내게 더욱 깊이 몸을 감추었고, 난 보다 조심스러워졌다. 바다에 대해, 자연에 대해, 그리고 그런 사실을 깨달아가는 나 자신에 대해. _p.67
흔들리는 배 안에서 고정되지 못한 것은 오로지 사람뿐이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이제 잠을 청할 수 있다. (중략) 흔들릴 때 사람은 더 준비하게 되고 강해진다. 바다가 흔들어댈수록 우리의 극복 의지는 더 강해졌다. _p.71
가끔 철저히 혼자가 되어보면 바로 그때 신은 나에게 진정 소중한 것들을 보여준다. 밖으로 빼앗길 시선마저 차단되면 그제야 내가 진정 바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너무 작아서 TV 소음에도 쉽게 묻혀버린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말한다. 너에게 소중한 것은 엄마가 지어준 저녁밥,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라고. 지금 너에게 들리고 보이는 바로 그것뿐이라고. _p.74
슬픔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일상이 아닐까. 일상에 늘 행복이 깃든 것이 아니라, 행복은 찰나의 순간 배어 나오는 일상의 선물 같은 것이다. 행복과 일상의 비중을 따지자면 1:99쯤 되지 않을까. _p.94
불확실한 바다가 일깨워준 것이 있다면 자신과 닮은 ‘유연함’이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단 사실이 공공연하기 때문에 쉽게 좌절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상황에 맞춰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된다. _p.135
이 거친 바다를 건너고 마는 인간의 불굴의 의지 또한 배워간다. 신을 극복할 수는 없지만, 신은 이런 ‘의지의 인간’에게 최소한의 배려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흔들지언정 못 가도록 막아서지는 않는다. _p.155
일단 뭐든 해보면 결국 잘된 일이 된다. 그러니까 무언가 고민하기 전에 일단 해보면 된다. _p.162
목표가 없어도, 꿈이 없어도 좋다. 그리고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눈앞에 놓인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이 보였다. 그때 바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도. _p.166
나는 안정 속에서도 무언가 꿈꾸고 있었고, 모두가 걷는 길이지만 그 안에서도 나만의 길을 찾고자 헤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_p.201
일단 용기 내어 벽을 넘는 순간이 중요하다. 상상 너머의 세계에 일단 발을 들이기만 하면 해볼 만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에게 처음인 길일지라도 누군가는 비슷한 길을 걸었다. 결국 모두 할 수 있는 일이다. 두려움을 박찰 수 있는 조금의 용기. 그거면 충분하다. _p.222
도망칠 수 없었기에 할 수밖에 없었고, 일단 부딪히니 해냈다. 내가 생각한 한계를 넘었다. 또다시 시련에 부딪히고 또 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감이 생겼다. 중요한 건 시련의 크기가 아니었다.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용기였다. _p.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