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하루로 차세대 웹 시스템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by 한빛리포터 1기 이아스
2001년은 일본의 연호로 헤이세이(平成) 13년입니다. 처음으로 거닐어 본 도쿄역 부근은 너무도 조용하고 각종 은행들의 본사 빌딩은 수도 중심의 상징처럼 높이 솟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이세이 9년에 짓기 시작한 빌딩이 아직도 올라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요.
오늘(6월15일)은 IDG재팬이 주관한 자바 정보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IDG재팬은 "xx"월드라는 제목으로 잡지를 내는데, 그래서인지 "자바월드"도 있습니다. 이번 발표회장에 다녀와서, 최근 일본 자바 개발의 동향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개발자의 눈과 귀를 통해 J2EE와 J2ME에 집중된 일본 자바 기술의 현주소를 조명하겠습니다.
세션은 총6개로 이루어져 있었고, 공통 세션3개, 개별 세션 3개가 엇갈려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첫 세션에서는 J2EE에 대한 기조 연설을 Sun Professional Services Java Center Tokyo Manager(직함 참 길죠?)이신 마이클 다익스(Michael Dykes: 미국계인가 봅니다. 일본인이었음)씨가 해주셨습니다. 참고로 다익스씨는 MIT수학과를 졸업하신 후1999년 썬에 입사하여 자바 컨설팅 쪽에 종사하신 후 2001년 1월 일본으로 부임하셨다는군요. 주제는 "Patten-Based Approach to J2EE Design"이었는데, 이제 썬에서는 단순히J2EE 플랫폼 뿐만 아니라 설계술(architectural art)까지 간섭하려 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 잘 되자고 하는 얘기니까 피가 되고 살이 되겠죠. 이번 달에 "Core J2EE Patterns"란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 가장 감명 깊었습니다(결국 책장사였단 말인가…).
그 다음 세션은 세 가지로 나누어졌는데, 웹스피어, 아이오나(IONA), 아이플래닛(iPlanet)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 소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평소부터 무지 궁금했던 아이플래닛쪽을 택했는데, 의외로 발표자가 빨리빨리 설명을 잘 해서 졸지 않고 끝까지 잘 들었습니다. 발표자인 후지이 아키히토(藤井彰人)씨는 일본 최대 IT 솔루션 기업인 후지츠(富士通)사의 SI부에서 경력을 쌓고 1997년 썬에 입사하여 소프트웨어 기술부에서 근무하시다가 1999년 썬-넷스케이프 연합 발족 후 애플리케이션 서버 관련 제품을 담당하였습니다. J2EE의 사실상 표준 참조 구현(de facto Reference Implementation)이자 넷스케이프 서버의 피를 물려받은 자부심과 함께 방대한 아이플래닛 제품의 기능을 짧은 시간에 두루 보여주고 얼러주며 무사히 광고(?)를 끝냈습니다. 유난히 아이플래닛은 주식회사가 아닌 썬과 넷스케이프의 합작 가상 회사임을 강조하던데, 아무튼 한 번 깔아는 보고 싶어져서 명함 주고 평가판 시디를 얻어왔습니다.
아마 오늘 발표회장에서 가장 희비가 엇갈렸던 연사는 "I-mode 전략-다양한 컨텐츠에 우뚝 선 휴대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엔티티-도꼬모(NTT-DOCOMO) 게이트웨이 사업부 전략 담당 부장 나츠노 타케시(夏野 剛)씨였던 것 같습니다. NTT에서 나왔으니 어련하겠지 했지만, 이건 정말 "자랑+간증+시건방"이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유익한 얘기는 많이 나와서 좋았지만, 마지막에 보안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을 때에는 그야 말로 "동문서답"으로 일관하여 마치 5공 청문회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가 털어놓은 비화 제1탄-아무도 하려 하지 않았다
NTT가 아이모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1999년 초입니다. 물론 서비스 개시 전에 준비는 다 끝난 터라, 1998년 말 NTT는 아이모드의 뒤를 이을(아직 시작도 안한 기술의 다음을 생각한다는 것이 우습기조차 하지만 이것이 바로 비즈니스맨들의 마인드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물색 중, 자바가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답니다. 그래서 NTT는 썬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망설이더랍니다. 당시 썬도 뭐라 확답을 하기 곤란할 만큼 휴대 전화 단말기에 자바를 탑재한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었겠지요. 하지만 이내 썬은 자신감을 되찾고 해보자고 덤비더랍니다.
1995년에 자바가 나온 이래 무려4년만에 드디어 제자리를 찾게 된 마당은 바로 자신들이 마련해주었다는 NTT측의 주장은,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지요. 나츠노씨의 이 말은 참으로 냉정하게 들렸습니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개발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사업으로 끌어들이고 서비스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지요. 아무도 하지 않으려 했고, 어떠한 검증도 없었지만, 우린 해낸 겁니다. 세계 최초지요. 그리고 서비스 개시6개월 만에 350만 아이애플리 사용자가 탄생한 겁니다. 아이모드가 100만을 돌파하기까지6개월이 걸렸는데, 자바는 대성공한 겁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의 현실이 유럽에서는 꿈이 되었습니다."
그가 털어놓은 비화 제2탄-왜 아이애플리는 10킬로바이트인가?
나츠노씨 자신도 털어놓은 이 비화는, 아이애플리의 용량 제한이 개발자의 혹평을 듣게 한 원흉인 "10킬로바이트의 벽"에 대한 유래였습니다. 아이모드의 데이터 전송속도는 모뎀으로 치면 9600보드정도 되는데, 우리가 보통 썼던 56k모뎀보다도 한참 느린 것은 수치만 봐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속도로 10kb를 다운로드 받아도 10초 정도 걸리는데, 만약 50kb라면 1분은 족히 걸린다는 거죠. 1분이 무슨 대수냐고 반문하실 분들도 계시지만, 시부야(일본 최고 번화 청춘 거리)의 아가씨들에게는 이것은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화면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다운로드만 꾸물꾸물 되면 막 버튼을 누르며 "이게 뭐냐"고 하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도 10kb의 운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겠죠. 더군다나 그것은 통신상태가 좋을 때의 얘기고, 전철을 탄다거나 기타 악조건에서는 상황은 더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개발자분들, 세상은 이다지도 어렵군요(그렇다고 개발자 여자친구는 이해할까요?).
그가 털어놓는 비화 제3탄-리콜, 리콜, 리콜~
정말로 부럽기만 한 65536색 TFT화면을 자랑하던 소니의 SO503i기종은 지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얼마 전 전량 회수되고 지금쯤 열심히 공장에서 반납한 사람들을 위해 찍어대고 있겠지요. 수십만 대로 알려진 판매량과 사실상 회수 후 신규 판매조차 못하는 상황은 분명히 소니에게나 NTT에게나 끔찍한 손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리콜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죠. 아이애플리 대응 기종 출시 초기에 파나소닉(Panasonic)이 내놓았던 P503i도 리콜되는 미증유의 사태가 이미 벌어졌었습니다. 그 악몽이 채 잊어지기도 전에 소니의 보안 결함 파동이 빚은 일련의 리콜 드라마는, NTT가 너무 성급했던 것이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선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나츠노씨의 말에 따르면, 이는 단말기 제조사가 다소 엉뚱한 발상을 했었기 때문이라는군요. NTT는 자사의 아이애플리 명세 규격에서 "단말기의 하드웨어 자원을 접근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답니다. 진동을 울린다거나 백라이트를 켠다든가 하는 자잘한 것이야 상관없다지만, 휴대전화에 들어있는 전화번호부 정보를 읽고 쓴다든가 아이애플리가 전화를 건다든가 하는 "무시무시"한 시도는 절대 불가하다고 했었는데, 소니가 그걸 망각하고 설계했다가 부랴부랴 뜯어고쳐서 시판했는데 안타깝게도 덜 고쳐진 부분이 있던 것이 바로 곪아 터져서 보안 문제로 비화된 것이죠. 아무튼 소니의 SO503i는 명품임에 틀림 없습니다. 게임 중에 진동도 잘 오죠.
나츠노씨의 자랑 거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아이애플리의 성공 덕분에 일본의 다른 통신업자인J-Phone과AU도 이에 뒤질세라 자바 탑재를 서두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두는 이미 자신들의 것이라는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과연 어떨지는 두고 봐야 겠습니다만. 참고로J-Phone의 자바 사양은 실로 엄청납니다. 3D 폴리곤에 30kb씩이나(아이애플리의 용량이 지독스럽게 적다 보니 정말 많게 느껴지는군요. 솔직히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이정도 용량이면 뭐든 만들 수 있겠어"라는 농담까지 오가고 있습니다.) 하니 그럴 수 밖에요. 게다가 썬의 표준 프로파일인 MIDP를 쓰고, 자바 대응 기종도 하나밖에 안나오니 기종별 차이에 골머리를 썩을 필요도 없죠. 아마 AU는 소켓 통신도 지원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관측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얘기 참 잘 들었습니다(깜빡하고 이분 프로필을 소개안했군요. 너무 장대해서 간단히 한마디로 하겠습니다. 아이모드의 산파이십니다. 지금은 AOL이사도 겸하고 계시군요. 목에 힘 줄만 한건가?)
다음 세션은 "임베디드 자바 최전선"이란 제목으로 JV-Lite제품군으로 유명한 액세스(Access)사에서1997년부터 NetFront의 산파 역할을 해오신 기술 부장 와타나베 토모노리(渡邊智德)씨가 발표해주셨습니다. 사실 일본의 임베디드 자바 시장은 NTT-DOCOMO, J-Phone, KDDI(AU)가 다 고객이기 때문에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거기에 PDA에다가 게임기에다가 아무튼 넣을 곳이 많다 보니 살 판 난 모습입니다. 일본이 아무래도 게임 강국이다 보니 임베디드 자바의 그래픽 처리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띄더군요. 리눅스에서 돌아가는 MIDP-DOJA(아이애플리 프로파일)겸용 에뮬레이터도 느낌이 좋았습니다.
이어진 공통 세션은 "서블릿/JSP프로그래밍에서 보안 구멍이 안생기게 하기"란 다소 생뚱맞은 제목으로 "독립행정법인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정보처리연구부문의 다카기 히로미츠(高木 浩光) 박사님이 열변을 토해주셨습니다. 나고야 공업대학에서 학위를 받으신 후1995년 자바 탄생시부터 "자바 하우스 메일링 리스트"를 꾸려오시며 자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 오셨는데, 도대체 무슨 구멍이 있나 했더니 이른바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Cross-Site Scripting) 문제에 대한 얘기더군요. 시연을 본 바로는 "장난이 아니다"라는 경각심을 느꼈습니다. 발표가 끝난 후에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즉석 앙케이트도 가졌었는데 저도 몇 번 손 든게 사진에 찍혔습니다(통계는 정확이 나오겠더군요). 자세한 것은
http://SecurIT.etl.go.jp/~takagi/SecurIT/doc/idg-jwd2001/을 보라고 프리젠테이션 문서에 나와는 있는데, 아직은 안올라와있군요(URL은 맞는 것 같습니다.
http://SecurIT.etl.go.jp/~takagi/까지는 있으니까요).
마지막 세션은 "휴대전화와 연계한 고속, 대규모 웹과 데이터베이스 개발의 노하우와 평가"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발표는 1996년부터 에프 스트림(F-Stream)사의 사장으로 객체 데이터베이스와 네트워크 분산 서버분야에서 일해오신 오오마치 카즈히로(大町 和裕)씨가 해 주셨습니다. 오오마치씨는 웹 서비스 최대의 병목은 "애플리케이션 서버와 데이터베이스"라는 설파로 문제의 핵심을 꼬집고는, 네트워크와 웹 서버는 충분히 빠르며, 네트워크로부터의 대량 접속이 애플리케이션 서버와 데이터베이스에 직격탄을 퍼붓는다는 말로 개발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이후 이 병목에 대한 대안으로 애플리케이션 서버의 부하 분산(load balancing)과 오브젝트 데이터베이스(Object Database-ODB)의 사용을 들었지만, 실로 ODB의 인지도는 조악하더군요(사용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손만 안든건지…). RDB없는 세상은 정말 오지 않는 걸까요?
아침에는 조그만 패트병 음료수를 나누어주더니, 도시락까지 주고, 텀블러(큰 커피컵-스타벅스에서 판다)에, 천 가방에(장보기에 딱 좋다), 구하기 힘든 자바월드 과월호도 샀고, 정말이지 5천엔의 참가비가 그리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익했습니다.
다음 달엔 국내에서 거의 기를 못피고 있는 애플사의 웹오브젝트(WebObject) 세미나에 가볼까 하는데, 시간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비가, 비가 가슴에
부끄러움, 부끄러움이
마음에 내립니다.